한/절/묵/상/
2026년 7월 1일 수요일 | 삼상 9:10-21
구약
사무엘상
작성자
admin_21CMC
작성일
2026-07-01 07:08
조회
29
[한 절 묵상]
사무엘상 9:21 (개역개정) “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니”
[묵상]
아버지의 암나귀를 찾아 헤매던 사울은, 마침내 선지자 사무엘을 만납니다. 그리고 “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자가 너와 네 아버지의 온 집이 아니냐”는 충격적인 말을 듣지요. 이 말에 대한 사울의 대답이 오늘 본문입니다. 표면적으로 그의 대답은 한껏 몸을 낮춘, 매우 겸손한 태도로 보입니다. 그는 준수한 외모와 유력한 집안 배경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작은 자로 칭하고 있으니까요.
그러나 이 겸손은 ‘하나님 없는 겸손’, 즉 인본주의적 겸손이었습니다. 왜냐하면 ‘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’라는 자기 인식의 기준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었으니까요. 그의 기준은 다른 지파’와 ‘다른 집안’에 있었습니다. 이런 비교에서 나오는 겸손은, 상황이 나아지면 언제든 교만으로 돌변할 수 있는 열등감이나 자기 연민일 뿐이지요. 우리는 이후 끊임없이 사람을 의식하다 무너지는 사울의 모습을 통해 이 사실을 정확히 목격하게 됩니다.
성경이 말하는 참 ‘겸손’은 하나님 앞에서의 ‘자기 인식’입니다. 그분의 무한한 거룩함 앞에 서니, 나는 언제나 죄인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, 오직 그분의 은혜만을 의존하는 태도이며 신앙이지요.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“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”(사 6:5)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말입니다. 이것이 ‘코람데오’입니다. ‘하나님 앞에서’라는 뜻의 이 라틴어는 우리가 있어야 할 신앙의 자리를 보여주네요.
오늘 읽은 사울의 겸손은 우리의 겸손을 돌아보게 합니다. 나의 낮아짐이 과연 ‘누구 앞에서’의 낮아짐인지 묻게 하지요. 그리고 이 질문은 우리를 그분의 하나님 되심과 나의 나 됨을 경험하는 자리에 세웁니다. 이것이 성도의 은혜이지요. 그리고 그 은혜에 대한 반응은 언제나 예배, 곧 ‘내 모습 그대로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’입니다.
[기도]
주님, 주님은 저를 ‘하나님 앞에서’의 자리로 붙들어 오십니다. 세상을 기준으로 삼아 사는 저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지요. 그렇게 주님 앞에 서서 저 자신을 보며, 제 앞에 계신 주님을 보는 것이 은혜입니다. 이 코람데오의 은혜를 누리는 새 날이게 하소서. 아멘.
__________________
(하루묵상)
– 동네세메줄성경(제3권) 40-42쪽
– 삼상 9:10-21
사무엘상 9:21 (개역개정) “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니”
[묵상]
아버지의 암나귀를 찾아 헤매던 사울은, 마침내 선지자 사무엘을 만납니다. 그리고 “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자가 너와 네 아버지의 온 집이 아니냐”는 충격적인 말을 듣지요. 이 말에 대한 사울의 대답이 오늘 본문입니다. 표면적으로 그의 대답은 한껏 몸을 낮춘, 매우 겸손한 태도로 보입니다. 그는 준수한 외모와 유력한 집안 배경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작은 자로 칭하고 있으니까요.
그러나 이 겸손은 ‘하나님 없는 겸손’, 즉 인본주의적 겸손이었습니다. 왜냐하면 ‘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’라는 자기 인식의 기준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었으니까요. 그의 기준은 다른 지파’와 ‘다른 집안’에 있었습니다. 이런 비교에서 나오는 겸손은, 상황이 나아지면 언제든 교만으로 돌변할 수 있는 열등감이나 자기 연민일 뿐이지요. 우리는 이후 끊임없이 사람을 의식하다 무너지는 사울의 모습을 통해 이 사실을 정확히 목격하게 됩니다.
성경이 말하는 참 ‘겸손’은 하나님 앞에서의 ‘자기 인식’입니다. 그분의 무한한 거룩함 앞에 서니, 나는 언제나 죄인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, 오직 그분의 은혜만을 의존하는 태도이며 신앙이지요.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“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”(사 6:5)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말입니다. 이것이 ‘코람데오’입니다. ‘하나님 앞에서’라는 뜻의 이 라틴어는 우리가 있어야 할 신앙의 자리를 보여주네요.
오늘 읽은 사울의 겸손은 우리의 겸손을 돌아보게 합니다. 나의 낮아짐이 과연 ‘누구 앞에서’의 낮아짐인지 묻게 하지요. 그리고 이 질문은 우리를 그분의 하나님 되심과 나의 나 됨을 경험하는 자리에 세웁니다. 이것이 성도의 은혜이지요. 그리고 그 은혜에 대한 반응은 언제나 예배, 곧 ‘내 모습 그대로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’입니다.
[기도]
주님, 주님은 저를 ‘하나님 앞에서’의 자리로 붙들어 오십니다. 세상을 기준으로 삼아 사는 저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지요. 그렇게 주님 앞에 서서 저 자신을 보며, 제 앞에 계신 주님을 보는 것이 은혜입니다. 이 코람데오의 은혜를 누리는 새 날이게 하소서. 아멘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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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하루묵상)
– 동네세메줄성경(제3권) 40-42쪽
– 삼상 9:10-21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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